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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 우리 사회의 현실 그리고 다양한 캐릭터 분석

by 고요의 하루 2024. 1. 13.

 

아파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현실과 문제점

영화는 아파트에 미쳐 있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효율적으로 많은 세대를 수용하기 위해 삭막한 콘크리트 더미로 지어진 닭장 같은 건축물이었는데, 어느새 편리하고 쾌적한 주거 환경의 상징이 되어버렸으며, 말도 안 되는 가격이 형성되었음에도 누구나 꿈꾸고 살고 싶은 유토피아로 탈바꿈되었습니다.이게 영화의 내용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아득 지는 건 저 또한 이런 모순적이고 답답한 현실에 저항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이 영화는 아파트에 미쳐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찰하기 위해 했다고 해요. 그리고 영화는 답답한 속을 시원한 탄산음료를 들이붓듯 파도처럼 밀려오는 웨이브로 서울 도시를 밀어버립니다. 하지만 단 한 곳 황궁 아파트만이 폐허 속에 굳건히 서 있죠. 모든 도시가 붕괴돼버린 상황 속에 멀쩡하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해버린 아파트의 모습은 영화의 제목처럼 유토피아. 기독교에서 말하는 약속의 땅처럼 살아있는 모든 이들의 선망의 장소가 된 듯 비춰집니다. 하지만 장소에 비해 생존자는 너무나 많았고, 붕괴돼버린 사회 시스템은 인간이란 존재가 가진 모든 역할과 사회적 지위, 도덕적 관념이나 윤리의식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렸으며, 영화는 작중 주민대표의 입을 통해 이제는 살인자나 목사나 똑같다는 말로 앞으로 벌어질 참상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이후부터 아파트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았다고 여기고는 외지인을 바퀴벌레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엄동설한에 내쫓고 죽도록 방관하죠. 물론 재난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고 한정된 자원을 지키기 위한 행위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적인 명화, 현실적인 민성

박보영 씨가 연기한 명화, 그리고 외지인들을 숨겨주었던 도윤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재난 상황에서도 타인을 존중하고 그들의 삶과 생명을 소중히 여깁니다.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와서도 인류를 놓지 않고 그들을 지켜주려고 애써 하지만 영화를 보고 온 많은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이들을 `민폐 캐릭터였다`,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다`며 비난합니다. 그리고 명화를 연기했던 배우 박보영씨 또한 이런 상황이었다면 자신도 명화처럼 행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박보영 씨나 우리 모두 알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는 인간다운 모습보단 위기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일지 모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명화나 도균이 다소 판타지적 이상적인 캐릭터로 비춰지는 데 반해 박서준 씨가 연기한 민성은 가장 현실적이고 우리들과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직업은 공무원으로 설정되었는데요. 이는 누구보다 사회 시스템에 순응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캐릭터로 설정하기 위한 장치이며, 동시에 모세범의 잘못된 리더십에까지 편승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습은 잘못된 사회 시스템을 인지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기는 했지만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지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타인의 목숨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도망치고 애써 먹을 걸 얻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눠주지 않는 모습. 마음은 불편하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모습 또한 재난 상황에서 보게 될 가장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우리 자신의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합니다. 따라서 극중 민성은 우리의 진짜 모습, 그리고 명화는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표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극중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 모세범

이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는 이병헌 씨가 연기한 모세범이었습니다. 상대가 사기꾼이긴 했지만 살인이라는 죄를 저질렀 자신이 죽인 김영탁의 이름으로 한궁 아파트에 살게 되어, 그리고 아파트의 리더가 되면서 그 누구보다 입주민들의 생존과 권리 보전에 힘썼고, 외지인들을 앞장서서 내쫓습니다. 하지만 이는 굉장히 표면적인 역할에서의 모세범의 모습이었고, 사실 모세범은 딸과 가족들을 사랑한 일반적인 가장이었으며,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보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어 구출하는 정의로운 캐릭터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항공 아파트 주민들의 신뢰를 얻게 되고, 갈 곳 없는 자신에게 소속감을 부여해준 주민들에 대한 보답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점차 변모하게 됩니다. 이는 과거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등장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지요. 역사는 히틀러만이 악인인 것처럼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히틀러는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던 사람이었어요. 한국 아파트의 입주민들과 모세범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범은 외지인을 내쫓자는 아파트 주민들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본질은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외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을 것입니다. 이는 김영탁이 죽은 후에도 그의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며 병수발을 들고 자신이 나가 있는 동안에도 항상 할머니 옆에 난로를 켜놓는 장면, 명화와 도균이 외지인들을 숨겨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도 눈 감아주는 장면들을 통해 묘사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이곳에서의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며 자신 또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모습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분노나 생존의 위협이 닥친 순간에는 더 강하고 폭력적인 리더십으로 그들을 선동하고 결국은 살인이나 외지인 처벌 같은 죄악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히틀러의 탄생과 굉장히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따라서 정체가 밝혀진 순간에 구토를 하며 괴로워하는 건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버려가면서까지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는데, 결국은 버림받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에 대한 괴리감과 공포, 분노의 복합적인 감정들이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