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순신을 그려낸 명량
아직도 영화의 북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 노량은 김한민 감독이 세 번째로 이순신을 그린 영화이자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영화입니다. 이전 작품들이 애국심을 고취 시키고 전투 자체의 장엄함을 묘사해 영웅의 업적을 치하하고 승리의 기쁨에 취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면, 이번 작품은 전쟁의 참혹함과 수많은 죽음들을 이순신의 대의와 희생에 혼재하여 보여줌으로써 화려하기보단 처절하게, 찬란하기보단 덤덤하게 역사를 고증한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순신장군의 죽음을 더욱 순고하게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총 3편의 트릴로지는 각각의 역할을 하며 다른 모습의 이순신을 보여주었고, 그 모든 이순신이 이번 영화에서 융합되어 절정에 치닫을 수 있었던 것이죠. 김한민 감독의 치밀한 설계는 명량에서는 용장, 한산에서는 지장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이순신은 전쟁의 명분과 외압, 자신의 소신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며 결의를 다져가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낮게 떨리며 읍조리는 목소리, 흔들리는 눈빛은 조선의 백성이자 충신으로 가장이자 대장의 입장에서 전쟁을 승리로 끝내야 할 소신과 개인의 삶을 대비, 그의 감정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니 이번 영화 노량은 이순신을 모티브로 제작된 많은 작품들이 그의 영웅적인 면모와 업적만을 치하하는 방식과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을 가지기도 하지만 영웅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거리를 좁혀 우리의 삶에 스며들게 하고 그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새로운 느낌으로 되새기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의 도입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시작하는 이유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즉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 `풍신수길`이 죽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실제 남겼던 유언을 보여주며 연출했듯 죽는 순간조차 뉘우침이나 후회 따위는 전혀 없는 모습으로 못다 이룬 야망과 죽음을 앞에 둔 나약한 육신일 뿐입니다. 이런 묘사는 어떠한 인간의 야욕도 죽음 앞에 부질없고 어떤 권세도 영원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장치이며, 동시에 임진왜란 7년의 역사 속 희생당한 수많은 백성들의 삶 또한 얼마나 허무맹랑한 야망에 의해 산화된 것인지 상기시키기 때문에 앞으로 절정에 치닫을 분노의 불씨는 이 장면에서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 앞에 겁에 질린 어린 아들과 야욕의 불씨를 넘겨받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병치에 보여줬고, 이순신의 관이 지나가는 길목에는 수많은 백성들의 애도의 눈물과 함께 밝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병치시켰습니다. 그러니 두 인물의 삶과 죽음은 시대의 끝을, 두 나라의 아이들의 모습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비유하는 장치라 볼 수 있었던 것이며, 이러한 배치는 역사적 나열에 의한 우연이 아닌 감독의 설계였다 해석할 수 있는 겁니다. 영화는 히데요시의 사망부터 이순신의 죽음으로 향하는 길목에 전쟁으로 산화한 수많은 죽음들을 배치하여 각각의 죽음들이 이순신에게 이르러 어떤 결의로 표출되는지 스멀스멀 끌어오르게 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감독이 노량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죽은 아들의 꿈을 꾼 이순신이 자신을 자책하며 흘리는 눈물, 준사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않느냐고 물어보는 장면, 목숨을 걸지는 말라고 당부하는 모습이나, 전사한 이수사의 판옥선을 대장선으로 삼아 출정하고 죽어나간 모든 이들의 명부를 태우며 넋을 기리는 장면. 수시로 보여주는 죽은 이들의 환영이 아직도 남아 함께 싸우고 있는 모습은 이순신이 왜 이 전쟁을 끝내야 하는지 그의 원한과 결의에 공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쟁의 막바지에는 조선 명나라, 외국 모두가 뒤얽혀 죽고 죽이는 싸움을 보여줍니다. 누가 이기고 지는지도 구분되지 않으며, 왜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지, 어떻게 싸워야 이길 수 있는지, 삶과 죽음이 혼재하여 복잡하게 얽힌 전투는 전쟁의 참상을 롱테이크와 슬로우모션으로 처절하게 연출함으로써 관객의 숨소리까지 압살하였습니다. 이 모든 죽음은 사실 한 추악한 인간의 부질없는 야망으로 시작, 희생이라는 점에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벌어지게 하면 안 되겠구나. 이 장면에 와서야 이순신 3부작 수많은 죽음들을 나열하며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 이순신이 전쟁을 포기할 수 없었던 진심이 무엇인지 관객들은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되었던 겁니다. 이 순간 우리는 모두 이순신이었습니다. 이순신은 북을 울립니다. 이 울림이 자신의 대의가 이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영원히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램, 우리에겐 긍지와 용기, 외구에겐 공포로 남아 죽음과 원한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냄으로써 앞으로의 모든 전쟁까지 방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서 말입니다. 이순신이 목숨을 바쳐 승리해 얻고자 했던 건 조선의 미래 후손들의 안전한 삶이었던 겁니다. 그러니 이순신의 삶과 죽음은 임진왜란의 첫 승리, 그리고 마지막 승리의 업적으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국가의 명예를 회복시켜 백성들에게 다시 살아갈 희망으로 어떤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우리를 지탱할 긍지와 용기가 되는 불씨로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고 있는 겁니다.
이순신의 죽음에 대한 연출의도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이순신의 죽음을 어떻게 연출했을까 기대를 안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많은 콘텐츠들이 시간에 순서대로 이순신의 죽음을 그리고 계속 전투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대사를 반드시 삽입했으니까요. 하지만 김한민 감독은 이 장면을 전투의 끝에 배치하고 이순신의 유지를 북소리로 대체함으로써 아군들의 사기가 저하되지 않고 전투를 이어나가 외구를 선별할 수 있도록 말보다 더 확고한 메시지, 심장이 터질 듯한 울림으로 이순신의 존재를 대변하였고 육신은 죽었지만 북소리의 울림으로 남아 병사들에겐 응원으로, 적군에겐 공포로 전쟁의 끝까지 함께 싸울 수 있게 했습니다. 대사나 죽음으로만 장면을 묘사했다면 뻔한 마무리, 죽음을 알리지 않음으로써 끝까지 함께 싸우고자 한 이순신의 의지가 전달되는 데는 아쉬웠을 텐데, 조금의 픽션을 가미해 연출의 방식을 바꾸니 이순신의 의지나 데이가 가지는 의미는 확실히 각인되고 울림은 더 커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만큼은 정말 극찬을 할 수밖에 없는 지혜로운 연출이었다 생각합니다. 다 아는 결말을 독창적으로 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요? 이렇듯 이 작품은 앞선 이순신 영화들과 수많은 관객의 비평을 거치고 수용하여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했고, 완벽에 가까운 대미를 장식했다 생각합니다. 이순신의 업적과 결의도 대단했지만, 10년여의 시간 동안 이순신을 연구하며 멋진 영화를 빚어낸 김한민 감독의 투지도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영화 노량 리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